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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레드]
고마워, 덕분에 눈물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네.
[거북왕의 하이드로 펌프!]
[효과는 굉장했다!]
[윈디는 쓰러졌다!]
[그린에게 싸울 수 있는 포켓몬은 없다!]
[그린의 눈앞은 깜깜해졌다!]
삐이이이익-!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넓은 필드 안에 울려 퍼졌다. 바닥이 조각나 바위투성이의 필드에 홀로 서있는 포켓몬은 한 마리. 그린의 윈디는 쓰러져 있었다. 챔피언이 패배의 쓰디쓴 맛을 느낀 날이자 새로운 챔피언이 승리의 왕좌에 오른 날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린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냐 이럴 리가 없어 나,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어째서 어째서야?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왜 항상 이기는 건 내가 아닌 거야 왜 항상 레드인거야. 싫어 싫어 전부 싫다고 항상 지는 나도 싫고 항상 이기는 레드도 싫어. 전부 전부 싫다고. 그린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볼을 들어 윈디를 볼로 돌려보낸 후 주저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맞은편에 서 있는 레드에게 말했다.
“챔피언이 되자 마자 자리 를 뺏기다니! 내 세상이 벌써 끝난거야...? 왜? 도대체 난 왜 진거야? 난 포켓몬을 기르는데 어떤 실수도 하지 않았어!”
레드는 한 손으로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그린의 처절한 외침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레드. 네가 포켓몬 리그 챔피언이야. 비록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말을 끝내자 그린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툭- 투둑-. 그린이 고개를 숙이자 눈물은 한 방울 두 방울씩 땅에 떨어져 먼지와 모래가 쌓인 필드의 바닥을 적셨다.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그린의 귀에 누군가 빠르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발소리의 주인이 나타났다.
“결국, 네가 이겼구나! 정말 축하한다! 피카츄와 함께 모험을 떠날 때 보다 많이 성장했구나!”
발소리의 주인은 그린의 할아버지인 오박사였다. 나, 나도 노력 했어요 할아버지. 왜 레드만 칭찬하시는 건가요? 네? 제발 대답해 주세요...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 그린은 고개를 들어 그의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린은 칭찬과 위로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말은
“넌 네 포켓몬에게 신뢰와 애정이 부족했던 거야!”
푹- 하고 노력했던 아이의 가슴을 날카롭게 후벼 파는 말 이었다. 오박사는 레드의 어깨를 감싸고 절망에 잠겨있는 그린을 뒤로 한 채 레드의 포켓몬을 등록하기 위해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들어가기 직전 뒤를 돌아본 레드는 자신을 보고 있는 그린과 눈을 마주쳤다. 그린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질투심과 절망감. 두 가지뿐이었다. 오박사와 레드가 명예의 전당으로 들어가고 철문이 굳게 닫히자 그린은 넓고 고요한 필드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노력에게 배신당한 자의 서러운 울음소리는 필드를 가득 채웠다. 그는 레드와의 배틀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었다.
얼마나 그렇게 울고 있었을까? 닫힌 철문이 열리고 등록을 마친 레드와 오박사가 나왔다. 오박사는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손자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그린. 너도 최선을 다했단다. 이 할아버지는 네가 자랑스럽단다.”
거짓말.
그린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린 할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일어나 말했다.
“듣기 싫어요!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세요? 저도 노력하고 제 포켓몬들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전부 했다고요! 그런 가식 같은 위로를 듣고 싶어서 노력한 게 아니라고요! 저도, 저도 인정받고 싶었다고요-!”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꾹꾹 눌러서 담아두었던 말을 쏟아낸 그린은 오박사와 레드를 뒤로 하고 밖을 향해 달렸다. 달리는 그린의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오고 있었다. 건물을 나온 그린은 나무들 사이로 달렸다. 오래 달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느낌에 그린은 옆에 있는 나무에 앉아 다리를 감싸고 웅크리고 있었다. 얼마나 그 상태로 있었을까?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뛰어왔는지 헉헉대며 숨을 고르고 있는 레드의 모습이 그린의 초록 눈에 비쳤다. 그린은 무릎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레드를 봤다. 그린의 빨갛고 퉁퉁 부은 눈을 본 레드는 입을 열었다.
“... 미안.”
그린은 레드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비꼬며 쏘아붙였다.
“고마워, 덕분에 눈물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네.”
레드는 그린에게 손을 뻗으려 했으나 생각을 바꿨는지 반쯤 뻗었던 손을 거두어들이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린은 홀로 숲에 남겨졌다. 혼자. 혼자였다.
***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고 그린의 마음은 조금씩 안정되어갔다. 그런 그린에게 한 가지 제안이 들어왔다. 현재 공석인 상록시티의 체육관 관장 직을 맡아줄 수 있겠냐고. 그린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린이 관장 직에 취임한 그날 밤. 그린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달과 별이 밝게 떠 있었고 리자몽 한 마리가 무서운 속도로 그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린이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리자몽의 등에 탄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레드. 레드였다. 레드는 놀란 얼굴의 그린에게 말했다.
“미안 그린. 그리고... 안녕.”
말이 끝나자 그린은 숲에서 심하게 말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 했지만 이미 리자몽은 높은 하늘로 날아오른 후였고 그린이 고개를 올려 하늘을 봤지만 볼 수 없었다. 그것이 그린이 본 레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특종! 사라진 챔피언 레드, 그는 어디에?』
***
레드가 사라진지 3년. 딱 3년이 지난 날 이었다. 레드가 사라지고 챔피언 자리에 돌아와 달라는 요청도 그린에게 들어왔지만 그는 그 자리의 주인은 레드라며 거절하고 체육관에 남았다. 길다면 길수도 있는 3년의 시간동안 그린의 마음의 상처는 점점 아물어 딱지가 생기고 새 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린은 소식이 없는 레드를 찾았지만 레드는 어디에도 없었다.
Rrrrrr- Rrrrrr-
달칵-
“네, 상록시티 관장 그린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그린의 사무실에 있는 전화기가 울렸고 그린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저 그린씨, 은빛산 포켓몬 센터의 간호순 이라고 합니다. 요새 이 부근에서 수련하는 트레이너들 사이에서 붉은 옷의 트레이너가 산 정상에서 보인다는 소문이 돌아서요. 혹시 그린씨가 찾으시는 레드씨가 아닌가 해서 연락 드렸습니다.”
그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린은 침착하게 대답 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간호순씨.”
그린은 전화를 끊고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그가 복도를 달리자 그의 뒤에서 상록짐 소속의 엘리트 트레이너인 야스타카가 서류가 한가득 담긴 상자를 들고 그린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리더! 어디가세요!”
“잠깐 급한 일이 있어서! 다녀올게!”
그린은 체육관 밖으로 나와 볼에 있던 피죤투를 꺼냈다.
“피죤투 은빛산 정상까지 부탁해.”
“피이- 죤-!”
피죤투는 그린을 태우고 크게 날갯짓을 해 하늘을 날아올라 은빛산으로 향했다. 하늘은 막힌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새파란 푸른색이었다.
***
하얀 눈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시리는 색의 은빛산. 오는 이는 없어 고요한 은빛산. 산의 정상에 도착한 그린은 피죤투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볼 속으로 돌아가게 한 뒤 눈밭을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걷자 저 멀리 하얀 눈에 혼자 서있는 붉은 사람이 그린의 눈에 들어왔다. 그린은 붉은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가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붉은 사람은 고개를 돌려 그린을 보았다. 붉은 눈과 초록 눈이 마주쳤다. 붉은 사람이 입을 열어 그린에게 말했다.
“안녕 그린. 오랜만이야.”
그린이 3년간 전하지 못했던, 전하고 싶었던 말을 입에서 꺼냈다.
“안녕 레드. 그리고 미안했어.”
레드는 모자를 잡고 푹 눌러 쓰면서 자신의 오랜 친우에게 살짝 웃어주었다.
-END
오랜만에 연성 진단기를 돌려서 써봤네요 헤헤. 그리고 이거 행아웃 하면서 쓴건데 행아웃 처음 해봤는데 꽤 재미있더라고요. 트친분들이랑 채팅하면서 정말로 즐겁게 썼어요! 그리고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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